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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경찰의 죽음
이 글은 2020년 3월 필자의 페이스북에 공개한 글입니다.
출근길 버스전용차로에 뛰어들 뻔한 적이 있다. 불과 일 미터 앞에서 버스들이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곳에 서서, 한 발짝만 내딛으면 모든 걸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발을 뗄까 고민하던 찰나에 신호등이 바뀌어버렸다.
죽기보다 싫은 출근을 한 그날, 나는 같은 팀 친한 선배에게 죽어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선배는 ‘마음에 감기가 든 것’이라며 근처 정신과 병원을 추천해줬다. 경찰청에서는 다들 마음에 병이 들어 자주들 가는 곳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머리 허연 의사선생님께 내 상태를 설명하다 눈물을 펑펑 쏟았다. 중증 우울증이라 했다. 선생님이 처방해주신 약을 먹으며 억지로 직장을 다녔다. 약 기운에 멍한 정신으로 출근하다보니 버스전용차로에서 고민하는 일은 그 이후로 없었다.
그날 신호등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그런 선배와 근무하지 않았거나 병원에 가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2015년 가을, 경찰청을 다닐 때의 일이다.
2019년 겨울, 경찰청에서 근무하던 내 대학 동기가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동기의 죽음을 전해듣고 한동안 멍했다. 빈소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동기의 영정사진과 상복을 입고 있는 아내분의 모습이 비현실적이었다.
학창시절 나와 같은 풋살팀에서 활동했던 동기는 책임감이 강하고 착했다. 내가 알던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궂은 일을 도맡아 했고, 항상 웃는 얼굴로 남에게 싫은 소리도 잘 못했다. 싱거운 농담을 잘 하고 밝았던 그는 우울증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아내와 아들을 끔찍이도 사랑한다는 건 동기들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 동기의 아내분이 최근 경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편이 일하던 곳에서 새벽부터 찬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고 했다. 무작정 연락처를 구해 만나자고 했다.
동기의 아내분은 남편이 생전에 사무실에서 부른다며 가족휴가를 취소하는 일이 잦았다고 했다. 주말에도 밥 먹듯 사무실에 나갔고 하루에 겨우 세 시간씩 자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남편이 죽은 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발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남편의 동료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녀는 남편과 같이 근무한 동료들이 남편 발인 전날 빈소에서 ‘감찰조사가 들어올 테니 말조심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했다.
남편이 떠난 후 그녀가 남편의 사무실 동료들로부터 받은 유일한 연락은 ‘청장기를 어디에 보관해 뒀냐’는 물음뿐이었다.
감찰에 자료를 제출했지만 조사는 지지부진했다. 언론 취재에 응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을 했지만 세간의 관심은 잠시뿐이었다. 남편이 사업을 질질 끌었다느니, 끈기가 부족하다느니, 남편의 죽음을 남편 탓으로 몰아가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가만히 있다가는 남편의 억울함이 그대로 묻혀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아내분은 월요일부터 매일 새벽 여섯 시 반부터 경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감찰 조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억지로 웃어보이는 아내분 앞에서 내가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내 동기가 이토록 사랑하는 이를 두고 세상을 등진 이유를 정확히 알 길은 없다. 그러나 동기가 세상을 떠나기 몇 년 전부터 일에 치여 죽어가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동기가 과도한 업무로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은 흔적은 아내분이 모아 감찰에 제출한 몇 년치 카카오톡 대화와 메신저 대화기록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한 발 내디딜 고민을 해본 사람이라면 안다. 우발적인 자살이란 건 없다. 오랜 기간 죽어가고 있다가 마지막 한 발짝을 더 들어간 것일 뿐이다. 나는 우연히 그 마지막 한 발짝을 내딛지 않았고, 동기는 불행히도 한 발짝 더 나갔을 뿐이다.
죽은 동기는 말이 없고 남은 동료들은 입을 닫아버렸다. 숨막히는 침묵 속에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동기의 아내를 도울 유일한 방법은 두 눈 부릅뜨고 끝까지 지켜보고 알리는 것밖에 없단 생각에 졸렬하나마 몇 자 적는다.
“그들이 공산주의자들에게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을 가뒀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기에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항의하지 않았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유대인들을 끌고갈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
그들이 나를 데리러 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 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마르틴 니묄러 ‘그들이 왔을 때’ (류시화 옮김)